오랜만에 쓰는 빌리 엘리어트 잡상 감상, 잡상

  *사진은 초대 빌리들. 왼쪽부터 제임스 로마스, 조지 맥과이어, 리암 모워

  달드리 감독님께서 드디어, 빌리 엘리어트 뮤지컬 공연을 한지 10년 가까이 된(정확히는 내년 5월이 10주년) 지금 뮤지컬 공연 실황을 내주신 덕에 부산에서 큰 스크린으로 도대체 몇 번째 빌리인지도 모를 엘리엇 한나의 공연을 봤다. 요약하자면 '엉엉 이 아저씨야 이걸 왜 이제서야 해주는 거야'와 '감독님 이렇게 은혜로운 기회를 주셔서 정말정말 감사합니다'와 '이래서 오래 살고 볼 일이란 말이 있는 거구나'가 뒤범벅 된 감정.

  그런데 정말 공교롭게도 빌리는 11월 27일에 개봉했고, 나는 회사에서 보내주는 해외여행으로 11월 29일에 출국했다. 당연히 와이드 릴리즈 아니고, 오래 걸리지도 않을 게 뻔한 작품(내용은 굉장히 보편적이고 익숙하며, 원작 영화는 유명하지만 돈 2만원 내고 극장에서 뮤지컬 실황 보는 사람이 한국에서 몇명이나 될까)인데 나는 이게 개봉하는 주말부터 열흘간 한국을 떠나 있다니 이 무슨 비극이람. 다행히 시사회가 있어서 개봉 전 주에 한번 보고, 28일 금요일에 영화의 전당에서 한번 이렇게 두번을 보고 출국했다. 귀국 일정이 12월 8일 오후 1시 반 부산 도착이라서 4시에 전당 가서 세번째 관람을 할 생각이었으나, 불행히도 눈 때문에 비행기가 연착돼서 3시에 김해 공항에 도착하는 바람에 블루레이 발매나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다.

  유럽 여행 중에도 이동하는 버스 안이나 숙소에서 쉬면서 핸드폰에 담아간 예전 빌리들의 동영상을 보고 뮤지컬 OST를 들었고, 경유하는 공항(갈 때는 프랑크푸르트, 올 때는 뮌헨)에서는 아 당장 런던행 비행기 잡아타고 싶다ㅠㅠ 이런 상태였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선 세번째 관람을 위한 컨디션 조절을 한다고 열심히 잠도 잤는데 결국에는 못 보게 되고 나니 뭔가 욕구 불만이 극에 달한 상태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설과 추석 연휴를 검색해서 2016년도 추석 연휴에 이틀 연가 쓰고 앞뒤로 주말 붙여서 9일동안 런던을 가리라 마음 먹었건만 그냥 회사 때려치우고 이때까지 모은 돈+퇴직금 탈탈 털어서 유럽 배낭여행 다시 가고 싶은 기분이다. 물론 그 중 최소 일주일은 빅토리아 팔라스 앞에서 숙박하고.

  잡설과 푸념은 이쯤하고 본격 빌리 엘리어트 뮤지컬 라이브 감상을 적자면 엘리엇 한나(두번째 사진)는 내 취향의 빌리는 아니었지만 두루두루 뛰어난 아이였고, 작품 자체도 6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변함없이 매력적인 뮤지컬이었다. 사실 내가 선호하는 빌리는 노래보단 춤에 강하고, 은퇴가 가까워진 고령(?)에, 예쁘장한 미소년보단 좀 거친(?) 느낌이 있는 아이인데 엘리엇 한나는 거의 정반대의 경우였다. 그렇다 해도 일단 내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고(약 45개월만에 보는데!), 내 취향에 완벽히 부합하는 빌리가 아닐 뿐이지 역시 부족함 없는 빌리였기에 공연을 즐기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그러니까 두번 보고 세번째도 볼 생각했지. 게다가 두번째 볼 때는 그새 엘리엇의 빌리한테 정이 들어서 표정 하나하나가 예뻐보이고 그랬다. 윌킨슨 선생은 이때까진 늘 좀 덩치가 있는, 아줌마 느낌의 배우들을 봐왔는데 이번 배우는 굉장히 늘씬하고 아름다운 사람이라 처음엔 좀 의외였지만 노래나 연기, 춤 모두 훌륭하게 소화해 내더라. 아빠 배우도 연기를 너무 잘해서 몇번이나 눈물이 나왔다. 이 아저씨의 붉어진 눈시울이 클로즈업 될 때마다 나도 덩달아 눈물이 핑 돌았달까.

  무엇보다 백조의 호수 장면(Dream ballet)만큼은 비록 스크린을 통해 보는 거라 해도 내가 이때까지 실제로 봤던 11번의 공연보다 더 감동적이었다. 초대 빌리 중 가장 어렸던 리암이 어느덧 훌쩍 자라 성년이 되어 수년 전 자신과도 같은 현역 빌리와 호흡을 맞추며 아름답게 무대 위를 누비는 모습은 생전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감격을 경험하게 해주더라. 리암을 포함해 초대 빌리(제임스, 조지, 리암) 중 누구도 실제로는 보지 못한 나도 리암이 자랑스럽기도 하고(니가 왜;;) 다른 전직 빌리들도 저 역을 하고 싶었을텐데 싶기도 하고 별 생각이 다 드는데 제임스와 조지와 리암의 데뷔와 빌리 은퇴를 쭉 지켜봐온 오리지널 팬들은 얼마나 감회가 새로웠을까.

  마지막 피날레 장면에서 역대 빌리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와 무대를 채우는 순간 역시 감동적이었다. 총 8명의 빌리를 보긴 했으나 그 중 영국인은 한명 뿐이었기에(나머지는 미국이랑 한국이 각 1명, 다섯은 호주) 스물몇이나 되는 빌리 중에서 내가 직접 본 빌리는 조슈아 페드릭이 유일했지만 그래도 마냥 좋았다. 유튜브 영상으로 익숙한 초대 빌리들을 포함해 리온, 레이튼, 톰 등 아는 얼굴도 몇몇 있고, 모르는 얼굴은 더 많았지만 이 무대를 위해 다시 모여준 아이(라고 하기엔 훌쩍 커버린 빌리들도 많음;)들이 너무너무 고마웠다. 게다가 다들 춤실력이 전혀 쳐지지 않아서 괜히 막 뿌듯하고 대견하고 흐뭇하고 그런 기분.

  본공연이 시작하기 전 스티븐 달드리 감독이 무대 위로 와서 인사를 하며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이싱턴 마을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볼 수 있도록 상영관을 설치해서 공연을 생중계 한다는 얘기를 하는 것도 상당히 감동적이었다. 뭔가 이 이야기의 근본을 잊지 않고 자신들이 소재로 선택한 시대와 배경을 실제로 살아온 사람들을 존중하는 태도가 진정성 있게 느껴졌달까. 당사자들이 이 뮤지컬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작은 위안이 되길, 스티븐 달드리의 이 뮤지컬을 자신들에 대한 오마쥬로 받아들이길 바란다.

  요즘에 많이 게을러져서 뮤지컬 본지 한참이 지나도록 글도 안 쓰고 있었는데, 영화 스터디에서 돌아가면서 각자 좋아하는 감독에 대해 발표 하는 거에서 내가 스티븐 달드리를 선택한 관계로 준비하다가 팬심에 차서 글을 썼다. 몇주 전엔 영화도 오랜만에 다시 봤고. 마지막으로 봤던 게 1년반쯤 된 거 같은데 몇년 만에 뮤지컬 다시 보고 영화 감상하니까 감정이 고조돼서 그런지 끝부분(빌리 아빠가 피켓 라인을 넘고, 전당포에 빌리 엄마 유품까지 잡혀가며 런던 갈 여비를 마련하고, 빌리가 오디션에 붙어서 애버링턴 마을을 떠나기까지)에서 아주 펑펑 울면서 봤음.
 
  빨리 블루레이가 발매돼야 하나 사서 캡쳐 100장 하면서 세세한 글를 쓸텐데 한국판은 나올지 안나올지도 모르겠고, 이미 나온 영국판은 지역코드가 안 맞고, 미국판은 아직 안 나왔다. 홍콩이 출시도 됐고 코드도 맞긴 한데 어쩐지 홍콩판은 안 사고 싶고.(뭔 심보람)

덧글

  • 소소 2015/01/02 15:02 #

    아 저도 이거 보면서 리암 나오는데 펑펑 울었어요 ㅠㅠ 리암이 저렇게 컸구나 싶으면서 나도 그만큼 나이들었구나 싶고.... 엘리엇 한나는 어린데 정말 실력이 대단한거 같아요 !!!!
    저도 좀 나이든 빌리가 좋긴 좋아요 ㅋㅋㅋ 제가 본 최악의 빌리는 미국에서였는데 너무 어려서 신체발달이 좀 덜 되서 춤을 춰도 팔다리가 쭉쭉 뻗지 않고 중간에 끊기는 느낌;;;
  • 침엽수 2015/01/05 19:58 #

    리암이 잘 커줘서 정말 고맙죠. 다른 빌리들도 춤을 추든 아니든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